“AI는 사람을 대체하지 않을 겁니다. 다만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가에 달려있죠. AI를 활용하지 못한다면 이를 ‘잘’ 활용하는 사람에게 대체될 수 있습니다”
지난 9일 한국관광공사가 주최한 ‘2023 관광산업 디지털혁신 오픈세미나’에서 ChatGPT란 무엇인지, 여행·관광산업에 어떻게 적용될지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졌는데요. 거의 모든 세션마다 입을 모아 위와 같이 말하더군요.
ChatGPT 같은 생성형 AI가 업무에 가져올 변화는 많이 들어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단순히 업무 생산성뿐만 아니라 여행이나 관광산업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이며, 사실 변화는 이미 진행되고 있습니다.
빠르게 높아지는 ChatGPT의 영향력 속에서 여행·관광산업은 생성형 AI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고, 또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요?
ChatGPT는 거대 언어 학습으로 진행된 파운데이션 모델 ‘GPT’를 기반으로 한 생성형 AI 중 하나입니다. LLM(Large Language Model)으로서, 이전에 나온 단어를 바탕으로 문맥에 맞는 문장을 생성하도록 설계되었어요. ‘티끌 모아’라고 제시했을 때 ‘태산’을 맞출 수 있도록 말이죠.
파운데이션 모델로 작동하는 초거대 AI는 이전과 무엇이 다를까요?
과거 AI가 의료, 법률과 같은 분야별 모델을 만들고 학습시키는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모델의 크기를 키우고 많은 데이터를 학습시켜 말 그대로 ‘기초’ 모델의 역할을 합니다. 광범위한 데이터로 학습된 파운데이션 모델에 관광처럼 특정 분야의 전문 데이터를 조금만 학습시키면 훌륭한 ‘관광 코디네이터’ AI가 만들어지는 거죠.
전문가들은 초거대 AI가 가져올 기대효과를 크게 3가지로 꼽습니다.
1) 정보 검색
기존까지는 사람이 하나하나 직접 검색하며 정보를 얻었다면 앞으로는 AI가 찾아서 보여줍니다.
큰 범위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점점 정보를 줄여나가는 방식을 말해요.
예를 들면 ‘자기계발서 20권 추천해 줘 →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것만 추려줘 → 이 중에서 시간 관리 방법에 관해 얘기하는 책은 뭐야?’ 로 수렴하며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습니다.
구글 같은 검색 포털에서 검색한다면 ‘자기계발서 20권 추천’,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시간 관리 방법에 대한 책’을 일일이 검색하고 종합해서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데 말이죠.
AI가 답한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에게 최적화된 답일 수는 없겠죠. 개인의 취향이 드러나는 (예를 들어 맛집 같은) 부분이라면 더더욱 말이에요.
AI가 답한 내용에 좋아요, 싫어요 등의 평가와 더불어 대화를 통해 학습시키면 점차 나에게 맞춤화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2) 업무 생산성 향상
정보 검색 다음으로 가장 많이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일 텐데요. 반복적이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메일이나 문서 작성 시간을 대폭 줄여줍니다.
그뿐만 아니라 광고 문구 작성처럼 창의성을 요구하는 작업에도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어요. 한국어 데이터로 학습하여 한국의 ChatGPT라 불리는 네이버 초거대 AI ‘하이퍼클로바’를 활용한 현대백화점의 AI 카피라이터 ‘루이스’가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2주가량 소요되던 카피라이팅 업무 시간을 3시간으로 단축시켰다고 해요.
3) 콘텐츠 생산
생성형 AI는 ChatGPT처럼 텍스트 외에도 이미지, 영상, 음성 등 다양한 형태로 제공될 수 있습니다. 더 다양한 콘텐츠를, 빨리 만드는 게 가능해졌어요.
생성하려는 이미지에 대한 설명을 텍스트로 전달하기만 하면 ‘미드저니(Midjourney)’나 ‘달리(Dall-e)’는 빠른 시간 내에 그럴듯한 이미지를 만들어 냅니다.
이외에 Microsoft에서 발표한 365 Copilot을 보면 문서 내용에 기반한 PPT가 순식간에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ChatGPT는 로그인만 하면 마치 사람과 대화하듯 쉽게 이용할 수 있어서인지 5일 만에 사용자 100만 명을 확보했고, 2달 만에 월 사용자(MAU) 1억 명을 달성했습니다. 100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하기까지 넷플릭스는 3.5년, 페이스북은 10개월, 인스타그램은 2.5개월이 걸린 것에 비하면 엄청난 속도의 성장세를 보였죠.
ChatGPT의 등장으로 생성형 AI가 시대를 빠르게 장악할 거란 사실은 모두가 동의할 겁니다. 다만 포춘지에서 전 세계 500대 기업 CEO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55%가량이 ‘(AI의) 적합한 용처를 모르겠다’고 답했어요.
즉 AI가 중요한 기술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우리 기업에서 어떻게 도입하고 활용해야 할지 어려움을 느낀다는 건데요. 이는 여행과 관광산업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방향성이 막막하다면 빠르게 AI를 도입한 기업의 사례부터 살펴봐야겠죠. 여행·관광산업에서는 ChatGPT 같은 생성형 AI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요?
마이리얼트립은 지난 2월 챗GPT를 연동한 ‘AI 플래너’ 서비스를 출시했습니다. 채팅창에 ‘오사카 3박 4일 여행 일정 추천해 줘’라고 입력하면 대화하듯이 여행 일정을 추천받을 수 있어요. 인기 여행상품, 숨겨진 명소 등 추가 정보도 얻을 수 있고, 마이리얼트립 내 상품 페이지로 연동되어 쉽게 예약할 수 있도록 했죠.
또 3월에는 ChatGPT가 플러그인을 발표하며 ChatGPT 내에서 여러 웹사이트와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구현했습니다. 이때 발표한 플러그인에는 숙소와 항공권을 예약할 수 있는 OTA인 익스피디아와 카약, 식료품 배송 기업인 인스타카트(Instacart) 등이 포함되었고요.
플러그인은 마치 콘센트에 꽂았다 뺐다 하는 플러그처럼 소프트웨어에 부가 기능을 추가한다는 의미로, 일종의 확장 프로그램을 말합니다. 플러그인을 설치하면 ChatGPT 내에서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나 기능을 다른 웹사이트에서 불러올 수 있어요.
백문이 불여일견, ChatGPT에서 익스피디아 플러그인을 실행해 봤습니다.
‘호주 여행 일정 추천해 줘’라고 입력하니 ChatGPT가 익스피디아에 연결해 실제 항공권과 가격, 호텔 등의 정보를 알려주고 익스피디아 링크를 통해 손쉽게 예약할 수 있더군요.
미국 IT 전문매체 패스트컴퍼니는 ChatGPT의 플러그인 발표를 두고 “오픈AI 버전의 앱스토어 탄생을 목격했다”라고 표현했는데요. 누구든 앱을 개발하고 사고팔 수 있도록 했던 앱스토어처럼 챗GPT 플러그인은 AI 생태계를 폭발적으로 성장시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뜻입니다.
그럼 가까운 미래에 ChatGPT가 여행, 관광산업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 수 있을까요? 이미 진행된 변화에 가능성 한 스푼을 추가해 미래를 전망해봤습니다.
1) 여행지 추천과 맞춤형 여행 계획
앞선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재 ChatGPT가 많이 활용되고 있는 부분은 여행지 추천입니다. 비용이나 타임라인에 따른 세부 계획도 세울 수 있어 나에게 딱 맞는 여행 계획을 제공받을 수 있죠.
여기서 더 나아가 만약 내 SNS와 연결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나에게 묻지 않아도 나의 취향에 맞춤화된 계획을 세워줄 수 있겠죠. SNS에 여행지 관련 글을 올린다면 추천받은 여행지에 대해 자동으로 피드백하는 효과도 있고요.
2) 여행 계획 수립부터 예약까지
플러그인을 연결하면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과 동시에 항공권, 호텔, 여행 상품 등의 예약까지 일사천리로 가능해집니다. 플러그인은 계속해서 확장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개인의 취향과 데이터에 따른 맞춤 서비스가 가능해지면서 사람들은 같은 여행지일지라도 각기 다른 여행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일종의 ‘나만의 여행 비서’가 탄생한 느낌이랄까요?
3) 여행 과정 매니지먼트
최근 태풍으로 인해 괌에서 비행기가 뜨지 못하고 여행객이 고립되는 일이 있었죠. 제주도 역시 날씨 영향으로 여행객들이 종종 고립되곤 합니다.
API 연동(소프트웨어 간의 연결)을 통해 ChatGPT에서 여행지의 실시간 상황을 알 수 있다면 어떨까요? 현지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여행 코스를 변경하는 등, 미리 대비할 수 있겠죠. 즉, 여행의 전반적인 과정을 관리할 수 있게 됩니다.
4) 언어별 통번역 제공
아마 낯선 여행지에서 전시나 뮤지컬 공연을 보면 ‘대충은 알아듣겠는데 언어에 집중하느라 정신이 없네’, 혹은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듣겠네’라고 생각하신 적이 있을 거예요. 익숙하지 않은 언어권이라면 더더욱이요.
스탠퍼드 대학생들이 연구하고 있는 AR 스마트 글래스를 활용한다면 ChatGPT가 언어를 인식하여 자막으로 띄우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외국인도 한국어로 진행되는 공연을 100% 이해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은 거죠.
“여행은 확률 아이템이에요. 날씨가 어떤지, 교통 상황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등에 따라 가장 좋은 확률과 나쁜 확률이 공존하죠. ChatGPT(또는 생성형 AI)는 100%는 아니더라도 개인의 취향과 상황에 맞게 90% 이상의 좋은 여행 경험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겁니다. 관광을 매니지먼트하는 역할인 거죠"
ChatGPT 같은 초거대 AI가 여행·관광산업에 가져올 변화를 ChatGPT에 물었더니 위와 같은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앞서 얘기한 내용과 상당히 비슷하다는 걸 느끼실 수 있을 텐데요.
“「GPT 제너레이션」 책을 쓰며 ‘앞으로 1년 이내에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전망을 얘기했었는데, 정말 빠른 속도로 발전해서 어느덧 현황이 되었어요. 오늘 전망으로 얘기한 부분도 당장 한 달 뒤의 얘기일 수 있다는 거죠”
AI는 먼 미래가 아닌 가까운 미래, 그리고 지금 우리 주위를 뒤바꾸고 있어요.
생성형 AI에 익숙해지는 소비자, 즉 여행객도 빠르게 증가할 겁니다. 기존에는 검색 포털이나 SNS 등을 활용해 여행 계획을 세웠다면, 앞으로는 생성형 AI를 통한 검색과 정보 수집이 더 자연스러워질 테죠.
빠르게 발전하는 인공지능 시대에서 어떻게 여행객을 사로잡고 AI를 통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