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 전국 숙박시장에서 팔 수 있는 객실의 51.5%가 모텔이다. 편견과 달리 한국 숙박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가장 큰 업종이다.
  • 모텔은 70년 동안 네 번 바뀌었다. 산업화 시기의 여인숙, 88올림픽을 앞둔 파크텔, 올림픽 뒤 대실 중심의 러브호텔, 플랫폼 시대의 부티크호텔이다. 매번 외부 환경의 변화가 계기였다.
  • 2025년 방한 외국인이 1,894만 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하며 다섯 번째 변곡점이 왔다. 그런데 시장의 절반인 모텔은 아직 이 흐름에서 소외돼 있다.
1950년대 여인숙, 1980년대 파크텔, 1990년대 러브호텔, 2010년대 부티크호텔, 2020년대 글로벌 버젯호텔로 이어지는 한국 모텔 70년을 그린 연표
모텔의 진화

아마도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텔"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연상되는 고정관념이 있을 것이다. 네온사인과 회전침대, 커플. 나 역시 이 일을 업으로 삼기 전까지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숫자를 보면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로빈컴퍼니의 '우리나라 숙박시장 2024'에 따르면 2024년 전국 숙박업소는 59,619개이고 팔 수 있는 객실의 51.5%가 모텔(법정 유형으로는 여관)에서 나온다[1]. 호텔도, 펜션도, 리조트도 아닌 모텔이 한국 숙박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추석 연휴 숙소 예약 데이터를 봐도 호텔(38.6%)과 모텔(36.0%)이 거의 대등하고 펜션(24.5%)은 한참 뒤다[2]. 무시하기엔 너무 큰 숫자이고, 이 거대한 시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컴퓨터를 전공하고 개발자로 첫 커리어를 시작한 필자는 어찌하다 보니 숙박업에서 18년을 보냈다. 2008년 뉴욕 한인민박 예약 플랫폼 '한인텔'을 창업한 것을 시작으로 옐로트래블랩스에서 우리펜션·핫텔·자리 등을 운영했고, 2016년 온다를 창업해 지금까지 이 업계의 변화를 현장에서 지켜봐 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숙박업소 투숙객의 예약 방법이 워크인에서 스마트폰으로 바뀐 것처럼, 늘 비슷한 자리에서 요란한 현수막을 펄럭이던 모텔도 시대에 맞게 진화해 왔다. 그리고 지금, 다섯 번째 진화의 시간이 왔다.

1세대: 여인숙의 시대 (1950~70년대)

전쟁이 끝나고 대한민국은 산업화의 길을 걸었다. 농촌의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면서 하룻밤 머물 곳이 필요해졌다.

기차역 앞과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 여인숙과 여관이 들어섰다. 1970년대까지 장·여관·여인숙은 대개 2~3평 남짓한 방에 화장실과 샤워실을 함께 썼다[3]. 온돌방에 이불 한 채가 전부였다.

그 시절 숙박시설의 목적은 단 하나, 잠자는 곳이었다. 여가라는 개념 자체가 사치였던 시대다. 출장 온 세일즈맨과 면접을 보러 도시에 온 청년, 가족을 만나러 상경한 어르신에게 여관은 하룻밤을 버티는 공간이었다.

1961년 8월 정부는 '외화획득의 증진'을 내건 「관광사업진흥법」으로 관광호텔을 따로 떼어 냈고[4], 12월에는 「숙박업법」(법률 제809호)을 공포해 이듬해 1월 1일부터 시행했다[5]. 숙박업법은 나머지 숙박업을 호텔영업·여관영업·여인숙영업·하숙영업으로 나눴고 "모텔"이라는 명칭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 구분은 오래 이어지다가 1999년 「공중위생법」이 폐지되고 「공중위생관리법」이 새로 제정되면서 사라졌다. 공중위생 법령상 숙박업이 하나가 된 것이다[6].

기차역 앞 골목에 서울여인숙과 숙박·식사 간판이 늘어서고 짐을 든 사람들이 오가는 1960~70년대 여인숙 거리를 재현한 그림
1960~70년대 여인숙 풍경

2세대: 88올림픽과 파크텔의 탄생 (1980년대)

모텔이 처음 크게 바뀐 계기는 88서울올림픽이었다. 정부는 올림픽을 앞두고 숙박시설 고급화를 추진했다. 세계 각국에서 선수단과 미디어, 관광객이 쏟아질 예정이었고 기존 여관 수준의 접객(Hospitality)으로는 손님을 맞기 어려웠다.

그래서 정부는 1986년 「올림픽대회등에대비한관광·숙박업등의지원에관한법률」을 만들어 지정 숙박업자의 시설 신축·개보수 자금을 관광진흥개발기금에서 우선 융자했다[7]. 장기 저금리 시설자금이 풀리자 숙박업주들은 너도나도 시설 투자에 나섰다. 객실은 3~5평으로 넓어졌고 공용 욕실 대신 객실마다 욕실이 들어갔으며 에어컨과 TV가 놓였다[3]. 이렇게 바뀐 숙소들이 "○○파크텔" 간판을 달았고[8], "~장" 여관이 모텔(Motor + Hotel)로 불리기 시작한 것도 88올림픽 전후다[9].

이 시기의 변화는 정부 정책에서 시작됐다. 외부 환경, 특히 대규모 국제 행사가 당시 숙박업의 지형도를 크게 바꿔 놓았고 이러한 패턴은 이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3세대: 러브호텔의 등장 (1990년대)

필자 또래로 보이는 꼬마가 굴렁쇠를 굴리던 개막식으로 시작한 16일간의 지구촌 행사가 끝났다. 우리나라는 금메달 12개로 지금까지 깨지지 않은 종합 4위에 올라 스포츠 강국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렸지만[10] 숙박업계의 올림픽 특수는 오래가지 않았다. 외국인은 떠났고 내국인 수요만으로 빈방을 채우기는 역부족이었다.

숙박업주들은 새로운 고객을 찾아야 했다. 시설은 좋아졌는데 채울 손님이 없었고, 그렇게 찾아낸 시장이 커플이었을 것이다.

잠시 방을 빌려주는 대실 영업이 보편화됐다. 3~4시간 단위로 하루에 두세 번씩 방을 돌리다 보니 가동률(OCC)이 100%를 넘는 숙박업소들이 생겼고 수익성도 높았다.

유흥가 뒷골목과 도심 외곽에 회전침대와 거울 천장, 화려한 조명을 갖춘 러브호텔이 들어섰다. 모텔은 점점 "그런 곳"이 되어 갔다.

장(莊)이나 여관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모텔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러나 그 대가로 모텔은 음침함의 상징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시설과 수익은 나아졌지만 이미지는 오히려 나빠진 시기였다.

하트 네온과 큐피드로 꾸민 1990년대 러브호텔 외관과 외국인 투숙객이 로비에 앉아 있는 2020년대 부티크호텔 내부를 나란히 그린 그림
모텔 이미지의 변화

4세대: 플랫폼 시대, 부티크호텔로 (2010년대~)

2010년대 들어 야놀자와 여기어때 같은 예약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모텔 시장은 또 한 번 큰 변화를 받아들여야 했다. 스마트폰으로 숙소를 예약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모텔 사장님들의 손님 유치 경쟁은 모텔 앞 배너와 음식점 제휴에서 온라인 카페로, 그다음에는 예약 플랫폼의 상위 구좌 차지하기로 옮겨 갔다. 플랫폼 덕분에 손님은 가격을 쉽게 비교하게 됐다. 업주들은 상위 구좌를 매력적인 사진과 가격, 리뷰로 채우려고 경쟁했고 그 경쟁은 플랫폼의 인지도가 높아질수록 치열해졌다. 손님은 방을 직접 보지 않고 사진과 리뷰만 보고 미리 예약한다.

살아남으려면 시설이 달라져야 했다. 모텔들은 인테리어와 사진, 플랫폼 광고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2011년 야놀자가 모텔 프랜차이즈 "호텔야자"를 내놓았고 이어 소형 브랜드 "호텔얌"을 더했다[11]. 이런 브랜드들은 모텔이라는 이름 대신 "부티크호텔"을 내걸었다. 광고비를 많이 낼수록 상위 구좌를 차지해 더 많은 잠재 고객에게 노출되는 구조도 이때 자리 잡았다.

고객층도 넓어졌다. 커플만이 아니라 비즈니스 출장객과 가족 여행객, 혼자 쉬러 오는 1인 고객까지 모텔을 찾으면서 모텔은 또 한 번 탈바꿈했다.

그러나 새로운 변화에는 늘 새로운 문제가 따르기 마련이다. 수요는 그대로인데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고 그 경쟁은 숙박업주들의 광고비 지출 증가로 이어졌다. 플랫폼 의존도도 지나치게 높아졌다. 업계에서는 중소형 모텔 매출의 80% 이상이 두 앱에서 나온다고 본다[12]. 가격 경쟁이 치열해 숙박비는 올릴 수 없는데 광고비와 수수료 부담은 갈수록 커진다. 금리는 치솟고 최저임금도 물가도 오르기만 하는데 내리는 것은 가동률뿐이다. 말 그대로 남는 것이 없어졌고 수십억 원을 투자했지만 이자도 내기 힘든 곳이 수두룩하다. 이 구조적 문제는 모텔 업주는 왜 힘들어졌나에서 좀 더 자세히 다뤘다.

그리고 지금, 다섯 번째 진화의 시간

여인숙이 파크텔이 됐고 러브호텔이 부티크호텔이 됐다. 돌이켜 보면 모텔은 매번 시대의 요구에 맞춰 변해 왔다. 88올림픽을 계기로 파크텔이 생겼듯 외부 환경이 바뀔 때마다 모텔도 진화했다.

시대계기변화
1950~70년대산업화, 도시화여인숙 → 여관
1980년대88올림픽여관 → 파크텔·모텔
1990년대올림픽 이후 공실숙박 → 대실 중심
2010년대모바일 플랫폼모텔 → 부티크호텔
2020년대인바운드 2,000만 시대?

한국관광공사 발표에 따르면 2025년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894만 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13]. 야놀자리서치는 2026년에 사상 처음으로 2,0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14]. K-팝과 K-드라마, K-뷰티 덕분에 한국은 전 세계가 가고 싶어 하는 나라가 됐다. 모텔에 또 한 번의 변곡점이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정작 한국 숙박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모텔은 이 거대한 흐름에서 소외돼 있다. 왜 그런지,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다음 편에서 다뤄 보려 한다.

「모텔의 재발견」 시리즈

참고자료

  1. 로빈컴퍼니, "우리나라 숙박시장 2024 : 전국" (2025.4.15) · lobin.co
  2. 뉴데일리, "㈜쏘카, '추석 연휴 인기 1위 여행지는 강원도'" (2024.9.13) · biz.newdaily.co.kr
  3. 글로벌이코노믹 (지정석 기고), "[기고] 숙박업의 진화사…여인숙→모텔로 '환골탈태'" (2016.11.9) · g-enews.com
  4. 국가법령정보센터, "관광사업진흥법 [법률 제689호, 1961.8.22., 제정]" · law.go.kr
  5. 국가법령정보센터, "숙박업법 [법률 제809호, 1961.12.6., 제정]" · law.go.kr
  6. 국가법령정보센터, "공중위생관리법 [법률 제5839호, 1999.2.8., 제정]" · law.go.kr
  7. 국가법령정보센터, "올림픽대회등에대비한관광·숙박업등의지원에관한법률 [법률 제3844호, 1986.5.12., 제정]" · law.go.kr
  8. 주간경향, "[특집]모텔만한 곳이 없다" (2005.8.9) · weekly.khan.co.kr
  9. 한국일보, "[겨를] 자동차ㆍ호텔의 합성어 '모텔' 변천사 보니…" (2017.7.19) · hankookilbo.com
  10. 뉴시스, "[스잘알]역경과 감동의 올림픽 도전사…최초의 메달리스트는?" (2021.4.27) · newsis.com
  11. 데일리안, "야놀자, 오프라인 100호점 돌파…'러브모텔' 탈피할 것" (2016.8.2) · dailian.co.kr
  12. 코리아포스트, "야놀자·여기어때, '광고비·수수료 갑질' 논란 재점화" (2025.10.13) · koreapost.co.kr
  13. 한국관광공사, "2025년 12월 한국관광통계 공표" (2026.1.30) · datalab.visitkorea.or.kr
  14. 야놀자리서치, "Vol.35 2026년 대한민국 인·아웃바운드 관광 수요 예측" (2026.1.13) · yanolja-research.com

자주 묻는 질문

한국에 모텔은 얼마나 있나요?
로빈컴퍼니 집계로 2024년 전국 숙박업소는 59,619개이고 팔 수 있는 객실의 51.5%가 모텔에서 나옵니다. 한국 숙박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가장 큰 업종인데 편견 때문에 시장 논의에서 자주 빠집니다.
모텔은 어떻게 지금의 형태가 됐나요?
네 세대를 거쳤습니다. 1950~70년대 산업화 시기의 여인숙·여관, 88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시설 개보수 자금을 융자하면서 생긴 1980년대 파크텔, 올림픽 뒤 대실 중심으로 바뀐 1990년대 러브호텔, 그리고 2010년대 플랫폼 시대의 부티크호텔입니다. 전환마다 그때의 외부 환경 변화가 계기가 됐습니다.
다섯 번째 진화는 무엇을 말하나요?
대실 중심의 국내 수요에 기대던 구조에서 벗어나 외국인 관광객을 받는 숙소로 옮겨 가는 흐름입니다. 2025년 방한 외국인은 1,894만 명으로 역대 최고였지만 숙박시장의 절반인 모텔은 아직 그 수요와 연결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 시리즈의 문제의식입니다.